여섯 살 아이와 경제교육을 하면서 가장 좋았던 건,
억지로 가르치지 않아도 실제 상황에서 아이가 스스로 배운다는 점입니다.
얼마 전 닌텐도를 빌리면서 있었던 일이 딱 그랬어요.
용돈이나 문제집으로는 절대 나올 수 없는 대화가 오갔거든요.
출장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일주일간 집을 비우는데, 심심할 때 잠깐씩 게임이나 하려고 아이 닌텐도를 챙겨가려던 참이었어요.
낑깡이(만 6세, 초1)가 어린이날 선물로 받은 닌텐도입니다.
사실 아이가 학교 간 사이에 제가 몰래 하곤 했던 물건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이번엔 일주일이나 나가야 하니, 그냥 가져가기보다 아이에게 물어보기로 했습니다.
"낑깡아, 닌텐도를 일주일간 빌려줄래? 대신 대여료를 네가 받는 거야. 금액도 네가 정해봐."
아이가 잠깐 고민하더니 되묻더라고요.
"평소엔 얼마 받을 수 있는데?"
이 질문 자체가 저는 좀 놀라웠어요. 무작정 금액을 부르는 게 아니라 기준점을 먼저 찾으려고 하는 거잖아요.
남편과 미리 대략 이야기해 둔 게 있어서 이렇게 답했습니다.
"30분에 천 원 정도가 맞을 것 같아. 그런데 24시간 내내 쓰는 건 아니고 그냥 빌려두는 거니까, 하루에 만 원 정도면 어떨까?"
그랬더니 아이가 바로 계산에 들어가요.
"그럼 일주일이 7일이니까, 7만 원 주는 거야?"
곱셈을 이렇게 자연스럽게 하는구나 싶어서 속으로 놀랐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제가 한 가지 개념을 더 얹어봤어요.
"7일을 다 7만 원으로 받기보다는, 장기 할인을 해주면 좋을 것 같은데."
"장기가 뭐고 할인이 뭔데?"
그래서 하나씩 알려줬습니다. 오래 빌리는 걸 '장기'라고 하고, 오래 빌리는 대신 가격을 조금 깎아주는 걸 '할인'이라고 한다고요.
여기까지는 제가 가르치는 입장이었어요. 그런데 그다음부터 아이가 저를 놀라게 하기 시작합니다.
"아빠랑 엄마랑 가격 다르게 받아도 돼?"
이게 무슨 말인가 싶어서 재밌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했어요.
"어떻게 다르게 받고 싶은데?"
"엄마가 많이 일하기도 하고 나 많이 챙겨주니까, 엄마는 1만 원, 아빠는 5만 원 받으면 좋을 것 같아."
솔직히 이 대목에서 내심 우습기도 했고 당황스럽기도 했습니다. 나를 좋아해 주는 것은 좋은데 그게 가격으로 연결되는 것이 당황스러웠어요.
가치를 매기는 연습으로는 옳은 방법이 아니다 싶었죠. 짚어줄 건 짚어줬습니다.
"엄마가 더 많이 일하는 건 아니야. 아빠가 하는 일은 네가 볼 수 있는 게 적어서 그렇게 느껴지는 거야. 그러니까 엄마도 아빠만큼 낼게. 그래도 5만 원이라는 가격을 정한 건 기특하네."
그렇게 대화는 일단락됐고, 저는 출장을 떠났습니다.

반전은 3일 차에 일어났습니다
출장 중간에 시간이 나서, 3일 차쯤 아이랑 남편이랑 같이 식사를 하게 됐어요. 그런데 막상 나와보니 닌텐도 할 시간도 없고 재미도 없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일찍 반납하기로 하고 아이한테 가져다줬습니다.
"엄마가 닌텐도를 더 쓸 일이 없을 것 같아서, 일찍 반납하려고 해."
아이가 바로 알아챕니다.
"응? 7일이 아니라 3일이네? 그럼 나 5만 원 다 못 받아?"
빌린 기간이 짧아졌으니 금액도 조정하는 게 맞겠죠. 저는 이렇게 말했어요.
"응, 엄마가 빌린 기간이 짧으니까 그만큼 줄여주면 좋겠어."
"그럼 얼마 줄 건데?"
3일이니까 좀 많이 줄여도 되지 않을까 싶어서, 슬쩍 낮은 금액을 던져봤습니다.
"2만 원 주면 어떨까?"
그랬더니 아이가 정색을 하는 거예요.
"엄마, 그건 너무 적잖아. 5만 원 받는 줄 알았는데 2만 원은 반도 안 되니까 너무 적어."
당황스러우면서도 놀라웠습니다. '반도 안 된다'는 판단을 순간적으로 하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제가 되물었어요.
"그럼 넌 얼마를 받는 게 맞는 것 같아?"
"음… 3만 원은 안 돼?"
"3만 원이면 반이 넘으니까 좀 많은 것 같아. 조금 더 생각해보자."
여기서 아이가 내놓은 논리가 압권이었습니다.
"그럼 반이라도 줘. 엄마가 원래 7일 빌리기로 한 거 줄인 거니까. 일주일의 반만큼 썼으니 반은 받고 싶어."
원래 계약은 7일이었고, 그중 절반가량을 썼으니 절반은 받아야 한다는 겁니다. 저는 웃음이 나면서도 납득이 됐어요.
"좋아. 그럼 5만 원의 반인 2만 5천 원을 줄게."
그랬더니 아이가 마지막으로 계산까지 스스로 해냅니다.
"5만 원을 양쪽으로 나누면 2만 원씩이고, 남은 1만 원은 쪼개야 하니까 5천 원 두 개로 바꾸고, 그 반이면 5천 원이네. 응, 2만 5천 원. 알았어!"
이 짧은 대화에서 아이가 한 것들
집에 와서 곱씹어보니, 이 15분 남짓한 대화 안에서 아이가 경험한 게 생각보다 많았습니다.
가격의 기준점을 먼저 물었습니다. "평소엔 얼마 받을 수 있는데?"라는 질문은, 협상에서 앵커(기준가)를 찾는 행동이에요. 누가 가르쳐준 게 아닌데 스스로 그렇게 접근했습니다.
장기 할인이라는 개념을 배우고 바로 적용했습니다. 오래 빌리면 깎아준다는 걸 이해했고, 나중에 "일주일의 반을 썼으니 반은 받겠다"며 비례 개념으로 되받아쳤어요.
가치를 차등해서 매겼습니다. 엄마와 아빠에게 다른 가격을 부른 건, 관계와 기여를 나름대로 판단한 결과였습니다. (물론 그 판단은 제가 바로잡아줬지만요.)
중도 해지 상황에서 자기 몫을 주장했습니다. 예상치 못하게 계약이 짧아졌을 때, 무작정 받아들이지 않고 "원래 약속이 있었으니 그만큼은 보상받아야 한다"는 논리를 폈어요.
마지막엔 분수 계산까지 스스로 끝냈습니다. 2만 5천 원이라는 금액을 누가 알려준 게 아니라, 5만 원을 절반으로 쪼개는 과정을 직접 말로 풀어냈습니다.
제가 이 대화에서 지키려고 한 것
이런 대화를 할 때 제가 신경 쓰는 게 몇 가지 있습니다.
첫째, 답을 정해놓고 유도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2만 원을 불렀을 때 아이가 반발했는데, 저는 "엄마가 정한 거니까 그렇게 해"라고 하지 않았어요. "그럼 넌 얼마가 맞다고 생각해?"라고 되물었습니다. 협상은 한쪽이 정하는 게 아니라 서로 조율하는 거라는 걸 경험하게 하고 싶었거든요.
둘째, 틀린 판단은 부드럽게 바로잡습니다. 엄마아빠 가격을 다르게 매겼을 때, 그 마음은 인정하되 사실관계(아빠도 똑같이 일한다)는 정확히 알려줬어요. 감정과 사실을 분리해서 다루는 연습이기도 합니다.
셋째, 결과보다 과정을 칭찬합니다. "5만 원이라는 가격을 정한 게 기특하다"라고 말한 건 금액이 커서가 아니라, 나름의 근거를 가지고 판단했기 때문이었어요.
여섯 살 아이와 돈 이야기를 이렇게까지 할 일인가 싶은 분도 계실 거예요. 그런데 저는 이런 순간들이 문제집 한 장보다 훨씬 오래 남는다고 믿습니다. 아이 용돈교육이든 초등 경제교육이든, 결국 핵심은 '내가 무언가에 어떤 가치를 매기느냐'를 스스로 판단해 보는 경험이에요. 이런 금융문해력은 어릴 때부터 실제 상황에서 익히는 게 가장 자연스럽거든요.
다음에는 이런 대화가 가능하도록 우리 집에서 몇 년째 돌리고 있는 시스템 이야기를 풀어볼까 합니다. 아이가 협상에 이렇게 익숙한 데는 이유가 있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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