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선 두 글에서 여섯 살 낑깡이가 닌텐도 대여료를 협상하고, 타임키퍼 급여를 두고 저와 밀당을 벌인 이야기를 했습니다. 두 이야기 모두 어느 날 갑자기 벌어진 일이 아니었어요. 우리 집에 몇 년째 돌아가고 있는 '홈잡(Home Job) 시스템'이라는 틀이 있고,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나온 대화들이었습니다.
오늘은 그 시스템을 통째로 공개해보려 합니다. 아이 용돈교육, 집안일 분담을 고민하시는 분들께 실질적인 참고가 됐으면 해요.

시작은 이 한 줄이었다
몇 년 전 유대인 경제교육과 발도르프 교육 관련 책을 읽다가 한 대목에 꽂혔습니다.
"집안일은 아이들의 일이다."
정확한 워딩은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요지는 이거였어요. 집안일 대부분은 성년이 되기 전에도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이죠. 그러니 아이에게 넘기는 게 자연스럽다는 것. 이 관점이 저희 부부에게 크게 와닿았습니다.
그래서 낑깡이가 세 살 무렵부터 아주 간단한 집안일로 시작했어요.
원칙은 하나였습니다.
필요한 것은 사준다. 하지만 갖고 싶은 것은 스스로 마련한다.
돈이 그냥 생기는 경험을 만들지 않는 거예요. 뭔가를 갖고 싶으면 일을 해서 벌어야 합니다. 이 원칙이 지금의 홈잡 시스템으로 발전했습니다.
엄마 아빠도 같은 판에 있다
처음엔 어리다보니 재밌어 했는데, 한 5세쯤이었어요. "왜 나만 이렇게 일이 많아? 왜 나만 일 해야해?" 아이만 일을 시키니 억울해했어요. 당연한 반응이죠. 그래서 엄마 아빠의 집안일에도 똑같이 직업 이름과 급여를 붙이고, 우리도 같은 시스템 안에서 움직이기로 했습니다.
여기에 한 가지를 더 얹었어요. 엄마 아빠는 사회에서도 경제활동을 하고 있잖아요. 그 부분도 시스템 안에 반영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엄마 아빠 직업 중에는 실제 본업을 살짝 녹인 것도 있어요. 예를 들어 제 직업 중 하나는 회사에서 하는 일을 그대로 옮겨온 것이고, 남편 직업 중 하나도 마찬가지로 실제 하는 일에서 따왔습니다. 다만 이 두 직업의 급여는 실제 가치보다 훨씬 낮게 책정했어요. 너무 높게 매기면 아이가 불공평하다고 느낄 것 같았거든요.
깡아네 홈잡, 전체 공개
지금 우리 집 홈잡 보드에 있는 직업들입니다.

엄마 직업
- 생명 돌봄이 — 반려동물 먹이주기·청소, 식물 물주기 (주 5회, 5,000원)
- 세탁사 — 수건·행주 모으기부터 세탁·건조·정리까지 (주 1회, 20,000원)
- 장보기 담당 — 살 물건 확인, 담기, 계산 (주 1회, 20,000원)
- 원가 기획관 — 엄마의 실제 직업을 반영한 일 (주 5회, 10,000원)
아빠 직업
- 요리사 — 메뉴 정하기, 요리 (주 4회, 20,000원)
- 설거지 요정 — 설거지, 건조 후 정리 (주 4회, 5,000원)
- 화장실 관리 — 세면대·변기·샤워부스·바닥·거울 청소 (주 1회, 20,000원)
- 자산 관리자 — 아빠의 실제 직업을 반영한 일 (주 5회, 10,000원)
낑깡이 직업
- 타임키퍼 — 가족에게 오늘 일정 알려주기, 미디어 시간 타이머 (주 2회, 5,000원 <- 변경안)
- 현관 관리사 — 신발 정리, 택배·배달 들이기 (주 4회, 10,000원)
- 우체통 관리사 — 우편물 확인·전달 (주 4회, 5,000원)
- 침구 정리사 — 침대 위 침구 정리 (주 4회, 10,000원)
- 리필 요정 — 휴지·물티슈·수건 떨어지면 채우기 (주 1회, 5,000원)
- 간식 상점 마스터 — 간식 재고·유통기한 확인, 간식 내주기 (필요시, 20,000원)
보시면 낑깡이 직업 수가 엄마 아빠보다 많아요(6개 vs 4개). 이건 의도한 거예요. 아이가 하는 일은 상대적으로 난이도가 낮은 것들이라 개수를 조금 더 붙였고, 앞으로도 아이가 자라면서 맡는 일의 개수와 난이도는 계속 늘어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저희가 용돈을 늘려가는 방식이기도 해요.
시스템은 고정된 게 아니다 — 세탁사 에피소드
원래 세탁 담당은 낑깡이 일이었습니다. 주 1회에 4만 원으로, 세탁기 돌리고 건조기로 옮기고 건조기 돌리고 꺼내서 개는 것까지 전 과정을 맡았어요.
그런데 낑깡이가 이 일을 그만두겠다고 했습니다. 4만 원이라는 꽤 큰 돈을 준다고 해도 힘들다는 이유였어요. 그래서 지금은 제가 이 일을 다시 가져왔습니다.
이 에피소드를 넣는 이유는, 홈잡 시스템이 한 번 짜면 끝나는 고정된 표가 아니라는 걸 보여드리고 싶어서예요. 아이가 힘들다고 하면 조정하고, 다른 일을 새로 원하면 만들고, 급여에 이견이 있으면 협상합니다. 시스템의 뼈대는 유지하되 세부는 계속 움직입니다.
급여는 어떻게 정하나
기준은 간단합니다. 같은 횟수라도 어려운 일이 더 받습니다. 예를 들어 낑깡이의 우체통 관리사와 현관 관리사는 둘 다 주 4회지만, 손이 더 많이 가는 현관 관리사가 두 배(10,000원 vs 5,000원)입니다.
그리고 새로운 직업의 급여는 항상 '기존 직업과 비교해서' 정합니다. 무에서 숫자를 만들지 않고, 이미 있는 직업 중 비슷한 난이도를 찾아서 그 급여를 기준으로 삼아요. 이 방식이 나중에 아이가 급여에 이견을 제기했을 때도 대화의 기준점이 되어줍니다. ("타임키퍼가 현관 관리사보다 쉬우니 그보다는 적게 받는 게 맞겠지"처럼요.)
주급 정산은 매주 가족회의에서
우리 집은 일요일마다 '가족회의의 날'을 정해서 그 주의 주급을 정산합니다. 누가 며칠 일했는지 체크하고, 기준 횟수를 채웠으면 주급을 지급해요. 이 자리에서 직업을 새로 만들거나 없애거나 급여를 조정하는 협상도 같이 이루어집니다. 실제로 타임키퍼 급여 협상도 이 가족회의 시간에 벌어진 일이었어요.
이 시스템으로 우리가 도달하고 싶은 곳
솔직히 이 모든 걸 하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육아의 최종 목표는 독립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요즘 결혼해서 독립하고 나서야 빨래, 청소, 요리 같은 기본적인 집안일을 처음 해보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부모가 성인이 될 때까지 다 챙겨주면 당장은 편하겠지만, 정작 혼자 살아야 하는 순간이 오면 아이가 크게 헤맬 수 있어요. 저는 그렇게 만들고 싶지 않았습니다. 성인이 되어서까지 일일이 챙겨줄 마음도 없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아요.
그래서 지금부터 아이가 맡는 집안일의 범위와 개수가 조금씩 늘어나는 게 맞다고 봅니다. 홈잡 시스템은 결국 용돈을 주는 방법이면서 동시에, 독립적으로 살아갈 준비를 시키는 과정이기도 해요.
지금 시작하고 싶은 분들께
거창하게 시작할 필요는 없습니다. 저희도 아이가 세 살일 때는 아주 간단한 일 한두 개로 시작했어요. 집안일 하나를 정하고, 이름을 붙이고, 작은 금액을 매겨보는 것부터가 출발점입니다.
아, 그리고 저희 집 급여가 너무 높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았어요. 어린아이 용돈치고 너무 많다고요. 집안 내에서의 소비처를 어떻게 만들었고, 실제 아이에게 돌아가는 돈이 얼마인지, 왜 그 금액으로 했는 지 등을 다음 글들에서 소개해드릴게요.
'아이와 금융방주 만들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5천원은 적어" 여섯 살의 급여 협상, 결말은? (0) | 2026.07.09 |
|---|---|
| 6세 아이 경제교육, 닌텐도 빌렸더니 생긴 일 (0) | 2026.07.06 |
| 부자 아빠, 유대인 교육법: 자녀의 독립과 경제 교육의 중요성 (5) | 2024.09.10 |